남과 북, 독재 체제를 구축하다
6·25 전쟁을 거치며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명분으로 권력을 키웠다. 헌법은 집권을 이어 가기 위해 두 번이나 무리하게 고쳐졌고, 그럴수록 정부에 등을 돌리는 국민도 늘었다.
피란 수도에서 고친 헌법 — 발췌 개헌
제헌 헌법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게 했다. 그런데 1950년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이승만에게 비판적인 의원이 대거 당선되었고, 전쟁 중 국민 방위군 사건과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까지 드러나면서 국회 간선으로는 재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개헌을 밀어붙였다. 1952년 임시 수도 부산에 계엄령이 내려지고 반대하는 국회 의원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연행되었다. 결국 직선제에 야당의 내각 책임제 요구 일부를 덧붙인 절충안이 국회를 둘러싼 위협 속에서 기립 표결로 통과되었다. 두 안에서 조항을 뽑아 엮었다고 해서 발췌 개헌이라 부른다.
새 헌법에 따라 전쟁 중에 치러진 첫 직선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다시 당선되었다.
반올림으로 뒤집은 표결 — 사사오입 개헌
헌법은 대통령의 중임을 한 번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1954년 자유당은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이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개헌안을 냈다.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명이므로 136표가 필요했는데, 찬성은 135표에 그쳐 부결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 자유당은 사람을 소수점으로 나눌 수 없으니 반올림하면 135명이면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부결을 뒤집고 통과를 선언했다. 이 억지는 거꾸로 야당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되어, 이듬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결성되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 1956년 선거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로 정부의 실정을 파고들었고, 후보 신익희의 유세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선거를 열흘 앞두고 신익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결과를 들여다보면 민심이 보인다. 무소속 조봉암이 유효 투표의 약 30%를 얻었고, 부통령에는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되었다. 무효표 상당수는 세상을 떠난 신익희를 추모하는 표였다. 특히 도시의 중산층이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야당을 지지했다.
반공을 앞세운 탄압
조봉암은 선거 뒤 진보당을 만들어 평화 통일을 내세웠다. 정부는 1958년 그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진보당을 해산하고, 이듬해 사형을 집행했다(진보당 사건). 이 판결은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로 바로잡혔다.
같은 해 정부와 여당은 언론과 야당 활동을 옥죌 수 있게 국가 보안법을 고쳐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정부를 비판하던 『경향신문』은 1959년 폐간되었다. 학생들도 학도 호국단에 편성되어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반공은 이렇게 반대파를 누르는 도구가 되었다.